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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로 왕조가 바뀌는 시기는 중국의 士大夫에게 왕왕 어려운 결단의 시기이기도 하다. 元代 末 전란의 시기를 거쳐 元·明 왕조 교체 시기 당시의 金華士人들도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해야만 했다. 그들 중에 혹은 存亡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殺身成仁 하고, 혹은 明朝에 出仕하고, 혹은 수절하며 은퇴하고, 혹은 隱遁하여 逍遙自適했는데, 대다수는 새 왕조에 협조하고 出仕했다. 金華士人들의 元朝에 대한 태도는 元 至正十九年(1359)에 婺州를 사수하지 못한 시기를 기준으로 前後 변화가 있었는데, 前期 士人들은 元을 구하는데 뜻을 두었고, 後期 士人들은 새 왕조 건설에 뜻을 두었다. 이러한 정치적 결단은 왕왕 士大夫들의 심리상태와도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데 심리적 변화는 필히 그들의 문학사상과 창작심리 문학풍격 등에도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문학 자체에 큰 변화를 준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창작의 수량이 감소하고 수준이 저하되었으며 詩文의 주제나 취향에 있어 前期와 後期가 다름을 알 수 있다. 前期의 詩文은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는데, 사회의 불공정과 부패를 폭로하고, 당시의 學風 詩風 文風을 비판도 하면서 心中의 강렬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後期는 전기보다 현실 비판적인 정신이 부족했다. 심미적인 풍격에서도 명확하게 차이가 있으며, 시풍도 매우 정연하고 평이하며 온화하고 점잖아서 접대나 칭송을 주제로 하는 詩作이 증가했으며 悲嘆과 憂愁에 찬 작품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