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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성 원이 논문은 젠더의 문제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일련의 셰익스피어 영화들을 중심으로 문학, 영화, 번역의 영상적 교차 읽기/보기의 과정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나타난 성(gender)역할 양상이 한글자막의 영향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연구이다. 한국어 자막이 있는 셰익스피어 영화를 통하여 원작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역학관계에 의하여 작용하는 다양한 언어들의 소리들을 중첩적으로 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단순히 원작 대 영화의 "상호텍스트적 (intertextual)" 읽기의 영역을 넘어서는, 즉, 다분히 "파생텍스트적(hypertextual)" 읽기/보기인 것이다. "파생"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듯, 파생텍스트란 의미가 선형적이고 순차적인 논리구조에 의하여 형성되는 기존의 문자텍스트와 달리, 독자의 연상작용에 의하여 자유로이 전후, 좌우, 상하로 파생되어 일탈되고 변형되는 텍스트이다. 따라서, 파생텍스트 상에서 의미는 하나의 고정된 사고체계에 구속되지 않은 채 탈중심화되고 중첩되며, 끊임없이 사라지고 또한 다시 생성된다.이러한 시각에서 세 편의 셰익스피어 영화, 즉, 『로미오와 줄리엣』, 『십이야』,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대상으로 문학-영화-번역의 파생텍스트적 읽기/보기를 시도한 결과, 한국어 자막에 사용된 구어체적, 윤리적 언어표현들은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성의 전복성(gender subversion)을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바로잡으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한국어가 지니고 있는 남성언어, 여성언어의 구분된 사용이 그 주된 원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영화 속에서 성의 전복을 주도하는 공간적, 청각적 언어들이 보수성을 지향하는 문어체적 시각언어의 힘에 눌려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영화의 한국어 자막이 형성해 내는 문학-영화-번역의 파생텍스트 상에서 등장인물들의 성정체성(gender identity)은 주어진 언어적, 문화적, 시각적, 청각적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해체되고 변화된다.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원작의 언어와, 감독에 의하여 편집되고 재구성된 공간적, 시각적 언어, 또 원작을 별도의 이질적인 문화와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번역어의 충돌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의미체계. 이는 바로 문학과 영화, 그리고 번역이 함께 만나 만들어 내는 새로운 문화의 파생텍스트이며,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이 텍스트 상에서 관객은 각자의 문화적 연결 통로를 만들고 이에 따라 자신들만의 새로운 읽기/보기의 체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