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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영웅 포세이돈- 카프카의 단편 『포세이돈』에 나타나는 의미의 끝없는 유예 고대신화에서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으로서 넘치는 활력과 무한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삶의 영역을 완벽하게 조화시킨다. 하지만 1920년에 쓰여진 카프카의 단편에서 포세이돈은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영웅이 아니라 모든 하천을 관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계산을 수행해야하는 관료로 등장한다. 끝없이 계산을 반복하는 포세이돈의 행위는 현대 관료주의 사회의 유지를 위한 조건일지라도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소진시킨다. 노동력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포세이돈의 행위는 무엇보다도 소외와 고립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한하게 반복되는 계산 행위는, 소외감의 주체가 실재 세계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자신을 부정해야하는 자기 위장에 다름아니다. 다시 말해 카프카의 포세이돈은 대상을 물량화시키는 계산의 반복 행위를 통해 결국에는 삶의 영역으로부터 그 자신을 질적으로 소외시킨다. 카프카의 단편 포세이돈은 전승된 신화에 대한 패러디이다. 패러디는 명확한 의미의 제시가 아닌, 대상의 본질을 내재하면서 암시하는 비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즉 카프카는 개념의 언어가 아닌 비유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상과 사태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한다. 단편 포세이돈은 그 자체로서 메타퍼이며 아이러니이자 파라독스이다. 이러한 수사적 어법들은 텍스트 안에서 의미의 규정이나 기표와 기의의 일치를 영원히 유보시킨다. 분열된 주체인 포세이돈은 현대사회에서 존재(Sein)인 동시에 무의식적 도구(Instrument)로 기능한다. 이러한 모순성은 포세이돈에게 그의 존재와 동일시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가치나 본질을 제공하지 않으며, 이는 자신과 사회로부터의 소외와 직결된다. 카프카의 포세이돈은 자신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끝없이 유예시키는 현존재(Dasein)이다. 현존재라는 기표에 대한 포세이돈의 기의는 영원히 유예된다. 카프카는 불가능한 현전(Präsenz)과 끝없는 의미유예(Sinnverschiebung)라는 비유를 통해 신화와 현대의 역사적 관계를 해체시킨다. 다시 말해 카프카는 불변의 신화적 전통을 가변적 현실 인식의 단면과 결합시킴으로써 기표와 기의의 끝없는 유예라는 인식의 사고 과정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단편에 남아있는 것은 끝없이 진행되는 사고 그 자체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의 유예를 통해 신화와 현재의 잃어버린 인과관계를 재발견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바로 여기에 현전을 부정하는 인식의 힘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