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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트너와 카네티의 언어 및 인식관 비교연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유럽은 실증적 경험 positivistische Erfahrung에 의한 자연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문화, 사회, 예술 전반에 걸쳐 혁신적 변신이 시도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과 개혁 사이에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이른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가 대두된 시기이다. 전통적 질서에 의해 가려진 인간과 자연의 진실된 모습을 인식케 하고 새로운 유토피아의 건설을 지향했던 모더니즘 운동에서는 무엇보다도 고전적인 자아관과 세계관을 비판, 거부하며 자아와 현실, 현실과 인식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성립시키고자 했다. 고전적 질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그러나 자아위기, 인식위기라는 염세주의적인 문화현상을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언어불신’과 ‘인식비판’은 바로 정체성의 위기에 몰린 모더니즘 시대상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프리츠 마우트너를 꼽을 수 있다. 언어철학자로 잘 알려진 마우트너는 세 권의 책으로 엮어진 언어비판 논고라는 그의 저서에서 언어의 인식매개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언어는 단지 우연한 감각적 체험을 통해서 제작된, 역시 우연한 생산품으로서 세계속에 존재하는 진실을 밝혀주기는 커녕, 오히려 인식의 장애가 되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마우트너의 과격한 언어철학은 무엇보다도 당시 자연과학의 비약적 발전에 편승해 팽배했던 실증적 경험주의에 근거한다. 감각경험에서 얻어진 내용들은 객관적 실재성을 지닐 수 없으며, 감각경험에 의존하는 언어는 더욱더 진실을 오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마우트너의 실증주의적 언어관을 보여주고 있다. 언어를 결국 인간의 주관적인 사유작용의 결과로서 규정짓는 마우트너는 언어의 인식기능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도 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마우트너의 언어철학과 유사하게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 상실을 제창한 - 마우트너보다는 훨씬 뒤늦게 태어났지만 - 동시대의 인물이 있다. 바로 언어와 인식의 문제를 문학의 주된 테마로 다루었던 엘리아스 카네티이다. 카네티의 언어비판은 그러나 언어의 무능력을 처음부터 주장했던 마우트너와는 그 출발을 달리한다. 우선 카네티는 인간의 인식과 의사소통 문제는 언어자체가 무능력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사용자들의 불충분한 사고의 결과라고 역설한다. 즉 사고의 한계가 언어의 위기를 가져 왔다는 비판이다. 카네티의 언어비판은 이에 따라 사고비판과 아울러 주체비판으로 이어진다. 마우트너와는 달리 언어의 한계성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카네티는 언어가 인식의 수단으로서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언어를 우연적인 감각경험의 산물로정의하고 언어자체에 불신을 가졌던 마우트너와는 매우 상이하게 카네티는 감각적인 언어 경험을 통해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언어관을 펼친다. 즉, 언어의 진리성은 이성적이고 방법론적인 해석에 의하여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감각적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견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나 뜻은 카네티에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언어에서 직접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소리, 음, 높낮이 등 언어의 표현방식만이 중요할 뿐이다. 카네티의 언어관은 소설 현혹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바로 등장 인물들의 언어표현 방식에서 인간이 처한 현실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