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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싱의 1759년작 『필로타스』에 관한 문학사적 비평은 영웅과 아이라는 양극을 기점으로 진동한다. 한편에는 정치적 맥락에서의 애국주의가 자리하며, 다른 한편에는 개인적 맥락에서의 나르시시즘이 자리한다. 필로타스가 영웅인가 아니면 아이인가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논의는 마땅히 영웅에 관한 진정한함의 파악이다. 영웅은 영웅주의에 대립된다. 영웅은 자신의 영웅적 위치 여부에 전적으로 무감하고, 자기 희생이라는 영웅적 역할에 결코 매혹되지 않으며, 그의 행위속에 자기 반영적 물음이 일절 부재한다. 영웅주의의 비호 하에 상연되는 자기 희생이라는 연극은 오롯이 대타자의 심연적 질문에 대한 회피이자 은폐일 뿐이다. 때문에 영웅주의는 나르시시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영웅을 꿈꾸는 필로타스는 비극적 파토스를 행위 이전에 이미 선취한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상연함으로써, 그는 상상적 이자관계에 위치하는 거울상에 매혹된다. 불완전하고 파편화된 거울 앞의 자아는 완전하고 통일된 거울 속의 상을 나르시시즘적으로 응시한다. 그의 오인은 결코 인지되지 않는다. 이를 인식하기 위한 대타자, 즉 상징적 질서가 필로타스에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작품 속에서 부재하지만, 부재의 형태로 그는 역설적으로 편재한다. 필로타스는 상징적 아버지가 아닌 초자아적 아버지의 욕망을 스스로 내면화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통해 초자아의 메시지에 회신한다. 영웅적 물음에 대한 비영웅적 회답, 바로 나르시시스트로서의 필로타스가 위치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