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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王門 江右學派의 여러 學者들중에서 漸進的으로 양명의 致良知學을 벗어나 자신들의 독특한 思惟의 틀을 가지게 되는 豹, 羅洪先, 劉邦采, 王時槐 四人의 主要思想을 분석하여 그들이 體得한 致良知學과 그 의의에 대해 살펴보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江右學派중에서 王陽明의 致良知學에 대해 대체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江右의 또 다른 학자들, 예를 들어, 鄒守益, 歐陽德, 陳九川 등에 대해서는 여기에 언급하지 않고, 대신 豹의 主靜歸寂과 羅洪先의 常寂通微·收攝保聚를 시작으로 劉邦采의 悟性修命, 그리고 王時槐의 透性硏幾에 대해 그 개략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먼저, 豹와 羅洪先은 已發과 未發의 二分적 구분을 통해 未發의 寂體인 양지가 已發의 양지를 主宰하며, 致知는 寂體의 良知로 확충시켜 나가 主宰가 되도록 함에 있으므로 主靜歸寂이 유일한 工夫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雙江이 寂體로부터 말하는 '主靜'의 의미는 반드시 周子가 말했던 主靜의 본래 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致知도 '우리 마음의 良知天理를 모든 사물에 이르게 하여 이들이 이 양지천리로 인하여 각기 그 마땅함을 얻고자 함'에 있다는 양명의 致良知 의미와도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羅洪先(念菴)도 雙江( 豹)와 마찬가지로 良知를 已發과 未發로 兩分하고 이를 토대로 主靜歸寂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雙江의 寂感義를 의심하여 常明의 知를 '항상 고요하면서도 은밀함으로 통하는 것(常寂而通微)'이라 깨닫게 되며 이를 收攝保聚의 공부로 삼았다. 그러나 그가 體悟한 眞寂(寂體) 즉, 常明의 知는 이미 양명이 말하는 양지의 본래 의미가 아니며, 비록 念菴 자신이 '常寂하면서 은밀한 幾微를 통한(常寂而通微)' 心體를 보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오히려 良知의 心體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따라서 念菴의 致知도 여전히 '寂을 구하는(求寂)'·'寂으로 돌아가는(歸寂)' 것으로 간주되어 결국 陽明이 말한 致知의 내용과 합치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羅 兩人은 비록 陽明의 門人으로 지칭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議論들은 사실상 양명 致良知의 義理內容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들 羅 兩人의 영향을 받은 劉邦采(師泉) 역시 性과 良知를 둘로 나누게 되고 見成良知를 부정하며, 悟性修命을 통해 立體致用을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王學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또, 透性硏幾를 주장한 王時槐(塘南)는 비록 劉文敏에게서 배웠으나 그의 사유방식은 劉邦采(師泉)에 가까웠다. 塘南은 未發과 已發, 然과 所以然의 관점에서 性을 말하고, 다시 氣의 流行으로써 硏幾를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그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朱子學的 사유에 가까운 내용들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양명의 致良知學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黃宗羲의 이른바 "姚江의 學이 오직 江右에서 그 傳함을 얻었다"고 하는 강우학파에 대한 극찬은 아마도 이들 江右 四人과는 관련이 없을 듯 하며, 오히려 이들의 잘못된 陽明 致良知學에 대한 理解와 體得이 향후 王門에 대한 수많은 오해를 惹起시키며, 또 지속적인 論難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依黃宗羲撰述的《明儒學案》中之所述, 所謂江右王門之學者總共三十三人之多. 然其中有些學者順承陽明之致良知學本義, 而又有些學者逐漸偏離王學, 以此形成王門江右派義理上之複雜和獨特的風格. 尤其是聶豹, 羅洪先, 劉邦采, 王時槐, 四人的思想脈絡保持相當獨特的看法. 因此本文從聶豹之主靜歸寂與羅洪先之常寂通微․收攝保聚, 而劉邦采之悟性修命與王時槐之透性硏幾之義來分析, 此四人之所理解陽明致良知學之義理和其意義. 於此, 先分別考察上述四人之主要看法, 玆分論則以下: 首先聶豹(雙江)和羅洪先(念菴)皆非陽明之及門弟子, 然因循分已發未發之思路以辨良知與知覺情識之別,而趨於主靜歸寂, 畢竟於陽明之致良知敎義理未能熟習. 兩人後來雖皆已稱門人, 然看諸其議論, 實未能了解陽明致良知敎之義理. 至於劉邦采(師泉), 不信見成良知, 而岐出良知之外以言悟性修命之功. 其悟之性旣與良知爲二, 故未必可以修命, 同理, 所立之體亦未必可以致用. 然事實上見在良知與良知旣只是同一良知, 故工夫唯在致良知, 而致良知亦唯就良知之隨時呈現而當下指點, 使人覺悟不令放失以成其致, 故致良知卽所以立體, 致知誠意以格物卽所以致用. 然劉邦采不信致良知, 而言悟性修命, 此已離陽明致良知敎之本義. 復次, 王塘南師事劉文敏, 然其思路近於劉師泉. 塘南主張透性硏幾, 此從已發與未發二分後言性, 故已落在然與所以然之方式說性. 故已非卽未發卽已發之良知․性體的本體. 又意識念三者(神)欲收斂反於心體, 以爲以此方見心體之生生眞幾. 故塘南之所謂透性硏幾, 以生生眞氣言透性以見良知之至善, 以此知卽意之體, 故其工夫必落在硏幾. 然塘南如此以然與所以然來言性, 又以氣之流行來主張硏幾, 此似皆近於朱子之思路, 故其主張亦不眞切陽明致良知學之義理. 總之, 聶豹, 羅洪先, 劉邦采, 王時槐, 四人皆不免偏離陽明致良知學之本旨. 因此黃宗羲在《明儒學案》所述而評價之 “姚江之學, 惟江右爲得其傳, 東廓, 念菴, 兩峯, 雙江其選也.….”之言, 實不相干此四人, 反而此也許指鄒守益, 歐陽德, 陳九川三人之致良知學的內容. 因爲此三人大體持守師說而無所偏離陽明致良知學之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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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靜歸寂, 常寂通微, 收攝保聚, 悟性修命, 透性硏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