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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블"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분신"을 현대적으로 개작하여 새롭게 해석한 수작이다. 소설 "분신"이 배경으로 삼는 근대화된 도시 페테르부르그의 문제를 영화 "더블"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현대의 공간을 통해 구현해놓는다. 디스토피아처럼 폐쇄적이고 숨 막히는 사각의 공간에서 존재감 없이 시스템의 일부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수많은 도플갱어적인 인물 군상들로 구현되어 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이몬 제임스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도플갱어성은 끊임없이 중첩되는 거울과 액자를 통한 반영의 이미지들을 통해 강조된다. 시스템의 기록에서 지워지면 그 존재마저 지워져버리는 가련한 존재인 사이몬 제임스는 특별해져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신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원작에서 골랴드낀이 근대화된 러시아에 편입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에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정반대의 노정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골랴드낀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망상, 편집증, 추적망상에 시달리고 그 타자와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분신을 만들어낸다면, 사이몬 제임스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 똑같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신을 만들어낸다. 원작이 골랴드낀의 심리적 병리현상을 그 원인에 대한 해석 없이 독자들 앞에 여과 없이 드러내어 근대성의 문제를 제기하며 깊은 심리주의의 장을 열었다면, 영화는 그 근대성의 문제점을 파놉티콘적인 세계의 모습으로 시각화시켜 제시하고, ‘분신’의 모티브를 통해 독특하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노정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문제 제기의 서사라기보다는 해결의 서사에 가깝다. 원작에서는 서술자의 관심이 문제의 해결보다 골랴드낀의 내면, 환상과 현실의 교차를 그려내는 담화 자체에 가 있기 때문에 그의 피해망상, 거절감, 소외감의 해결방법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영화는 새로운 여주인공 ‘한나’를 도입하여 소설 『분신』을 사랑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는 사이몬의 이야기로 풀어감으로써 사이몬 제임스의 고뇌와 갈등을 해결해주고 있다. 영화 『더블』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복잡한 소설 『분신』이 어떻게 영리하게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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