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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hat Hermann Hesse in den Biografischen Notizen, in denen er sein bisheriges Leben kurz und klar resümierte, rückblickend geschrieben: “Infolge des Camenzind-Erfolgs konnte ich 1904 im Sommer heiraten (eine Baslerin) und zog in das kleine entlegene Dorf Gaienhofen am Bodensee. Dort wohnte ich die ersten 3 Jahre in einem primitiven Bauernhaus sehr bescheiden, dann baute ich mir selbst ein Haus, in dem ich bis 1912 wohnen blieb. In Gaienhofen, wohin mein Tübinger Freund Ludwig Finkh mir folgte, lebte ich acht Jahre, im Versuch, ein natürliches, fleißiges, der Erde nahes Leben zu führen, baute meinen Garten, bekam meine drei Söhne. Es war die bürgerliche Epoche in meinem Leben. Unterirdisch freilich war ich auch damals von Problematik erschüttert, 1911 trat ich aus lauter innerer Not eine indische Reise an. Im Herbst 1912 verließ ich mit meiner Familie Gaienhofen und zog nach Bern”(Hesse 2002, 21f.)


1904년 2월 발표한 『페터 카멘친트』의 대성공으로 일약 문명을 얻음과 동시에 경제적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된 헤세는 그해 8월 초 바젤 출신의 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보덴제 호반의 작은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해 이후 1912년 9월까지 그곳에서 산다. 한 여인의 남편으로, 세 아이의 아버지로 가정생활을 하고 여러 분야 예술가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가운데 다양한 문필 활동을 펼친 이 가이엔호펜 시절을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시민적 시대’라고 규정한다. 표면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기 작가의 생활, 특히 그의 내면생활은 처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그는 자주 여행을 떠나며, 결국에는 ‘아주 내적인 이유로’ 장기간의 인도여행을 떠나기에 이른다. 천성적으로 ‘형성과 변화’를 지향하는 유목민적 기질을 타고난 작가로서 시도한 정주의 시민적 가정생활은 애초부터 성공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 같은 내적 불만과 불안은 당시에 발표된 많은 산문과 시에서도 반영된다. 이 글은 헤세의 ‘시민적 시대’ 시를 다룬다. 이 시기 산문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시와 관련해서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언급이 가끔 있어 왔을 뿐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적 시대’ 헤세 시는 소재·주제와 문체·언어적 표현 면에서 바로 앞 시기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시인으로서 헤세의 진일보한 면모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잃어버린 사랑과 어린 시절·고향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는 시, 다채로운 자연현상과 계절의 변화가 환기시키는 정서와 사상을 탁월한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자연 시, 여행의 즐거움과 그 고차적 함의를 다루고 있는 ‘여행시’가 특히 돋보인다. 이 글은 특히 자연 시와 여행 시를 중심으로 ‘시민적 시대’ 헤세 시를 상세하게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