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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르』는 러시아 부랴트 족의 구전 민족 서사시로 100년 전쯤 채록되어 책의 형태로 출판 된 이래 학문의 전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으로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이제까지의 연구 업적을 모두 검토하고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 논문에서는 이전의 연구 성과에서 간과되었던 유머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게세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주제 ‘유머 분석’은 이 작품을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게세르』의 중요성과 무게 및 내용의 심오함에 비추어 볼 때 ‘유머’라는 주제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자못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구전 문학이 생존하게 되는 데에 있어서 ‘유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러시아어 번역본을 기준으로 800쪽이 넘는 『게세르』에 유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작품을 암송하는 ‘게세르 연창자’나 암송을 듣는 청자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결과적으로 『게세르』의 현존에 ‘유머’가 한 역할은 절대적인 것으로 ‘게세르 연창자’에게 흥을 돋우게 해 주었으며 청자에게는 재미를 제공했다. 이 논문에서는 수많은 유머 이론 중 대표적인 네 가지를 적용하여 『게세르』에 나타나는 유머를 분석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우월이론(superiority theory of humor)’다. 이 이론의 근간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등장하는 인물들보다 시청자나 독자가 우월하다고 느낄 때 유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시청자나 독자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이 이론에 부합하는 적절한 예는 『게세르』의 ‘첫 번째 가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쪽의 선한 신인 ‘한 후르마스’와 동쪽의 악신 ‘아타이 울란’과의 싸움 장면이 대단한 유머를 내포하고 있다. 결혼식 초대를 하고 그 초대를 잊고 참석하지 않은 것이 싸움의 발단이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한 후르마스’가 ‘아타이 울란’의 싸대기를 갈기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응대로 ‘아타이 울란’은 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응대한다. 신들의 싸움이다. 독자인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적인 어른들의 다툼이라기보다는 어린 아이들의 싸움과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월적’ 입장에 놓이게 되며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신’과 ‘악신’의 다툼과 문제 해결 방법이 ‘인간적’이다 못해 ‘유치’한 단계까지 하강함으로 유머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대 영웅 서사시의 첫 부분에서 이러한 유머가 배치됨으로 암송을 하는 ‘게세르 연창자’나 듣는 청자의 입장에서는 작품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흥미’를 확보하게 된다. 두 번째 이론은 ‘불일치 이론(incongruity theory)'이다. 이 이론의 근간은 주어진 상황에서 관찰자가 기대치를 갖게 되는데 결과가 이 기대치와 어긋날 때 유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할 수 있는 적절한 예는 『게세르』에서 ’한 후르마스‘와 그의 세 아들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지구상에 지독한 가뭄이 있어 이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인류에게 큰 재앙이 닥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누군가가 지상으로 내려가 해결하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아버지 ’한 후르마스‘가 차례로 세 아들을 불러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세 아들의 반응이 독자인 인간들에게 전혀 예기치 않은 거절일 뿐만 아니라 그 거절의 이유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다. 큰 아들 ’자사 메르겐 바타르‘의 예를 들어보자. ‘자사 메르겐 바타르’는 절대로 지상으로 내려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으며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그는 지구상의 비에 흠뻑 젖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으며, 둘째, 뾰족한 화살에 맞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고, 셋째, 지구상의 더러움에 더렵혀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을뿐더러 마지막으로 동생들이 있으니 대신 동생들을 보내라는 것이다. 이는 선한 신 ‘한 후르마스’의 장남으로서 할 일이 절대로 아니다. 핑계로 대고 있는 네 가지 모두가 적이 인간적인 것으로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의 발로이다. 신의 아들의 반응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독자들의 기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유머의 원천이 된다. 유머의 이론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자칫 웃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 연구를 통해 텍스트의 이해에 더 깊은 차원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기대치에 반대되는 정도는 ‘자사 메르겐 바타르’의 정체성에 대한 언급이 그의 반응보다 먼저 나올 뿐만 아니라 구체성에 기반하고 있다. ‘자사 메르겐’은 한 후르마스의 장남이다. 그는 천국에서도 높은 곳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토네이도를 관장하는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검은 말을 타고 다닌다. 이렇게 장중하게 그의 정체성이 규정되어 있는 것에 반해 그의 반응은 일반적인 독자들보다 훨씬 더 미천한 소시민의 입장보다 더 왜소하다. 이것이 이 유머의 본질적 요소다. 이른 바 ‘경감 이론(Relief theory of humor)’이 전통적으로 분류되는 세 번 째 유머 이론이다. 이 이론의 근간은 웃음이 인간의 억압되고 잉여의 정신적 에너지를 경감시켜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 적용하는 것은 견강부회가 될 것임으로 이론 자체만 각주에 소개하고 곧바로 네 번째 이론을 적용하여 유머를 분석한다. 네 번째 유머 이론은 소위 말하는 ‘즐길만한 이완으로서의 유머’ 이론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에 근거한 이 이론은 ‘정신적인 휴식은 기쁨’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문학적 기법 중의 하나인 ‘카타르시스’와 일치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유머는 ‘아바이 게세르’가 교활한 배신자인 삼촌 ‘하라 주탄’을 벌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비교적 긴 이 유머를 조목조목 분석했다. 이 논문에서 적용한 네 번째 유머 이론은 이른바 ‘인식이론(Cognitive theory of humor)'다. 이 이론의 근간은 인간(S)이 어떤 대상, 행동, 상황(x)의 특징들을 어떤 시간(t)에 인식하면서 다음 조건이 충족될 때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인간이 그 시간에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을 때, 둘째, 인간이 x를 t에 인식할 때, 셋째, 인간이 x에 대해 일말의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기대치를 가질 때, 넷째, 인간의 기대치가 어긋날 때이다. 이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예를 아바이 게세르와 그의 아내를 훔쳐간 악마 롭스골로이와의 전투에서 찾았다. 이들의 전투는 비교적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묘사하고 있음으로 요약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가 어렵다. 이들의 전투에서 독자(인간 S)가 느끼는 유머와 그로 인해 웃을 수 있음은 이른바 ’인식‘이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게세르』는 수많은 유머를 내포하고 있는 텍스트이며 유머가 가지는 시학적 기능은 『게세르』가 구전으로 생존할 수 있었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전통적인 유머 이론 네 가지 중 세 가지와 비교적 새로운 유머 이론인 ‘인식이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이 텍스트가 내포하고 있는 웃음을 유발하는 기법과 장치를 이론적으로 규명했다. 이 연구는 이론적 토대 없이 텍스트를 읽었을 때 간과하기 쉬운 유머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유머가 가지는 시학적 기능 또한 밝힘으로 『게세르』를 이해하는 폭과 깊이를 새로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