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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海印寺) 소장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은 1246년 남해분사도감(南海分司都鑑)의 총 책임자였던 정안(鄭安)에 의해 개인적으로 발원된 시왕경으로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본 시왕경이다. 정안은 최우(崔瑀)의 사돈으로 1243년부터 1247년까지 국가의 대장경 판각사업에 관여하였고, 고향에 정림사(定林寺) 라는 개인사찰을 건립하여 명승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곤 했던 불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국가 최대 사업과 때를 같이 하여 판각된 이 시왕경은 서체의 아름다음과 정교한 변상도 뿐 아니라 현존하는 중국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일렬의 인물상들이 있다. 본 논문은 그 동안 연구되지 않았던 이들의 변상도와 128명의 십대왕상, 판관, 귀왕, 장군, 사자상들을 항목별로 해독 및 분석하고, 관련 중국 및 고려 자료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들의 연원과 의의를 조명하고자 한다. 국보 206-10호로 지정된 전면의 시왕계 인물상들의 나열은, 당-송-요-금-원, 그리고 후대의 중국 자료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시왕 세계의 포괄적인 판테온으로서, 아직까지 중국 자료에서는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상 이들은 고려 자체의 독특한 발전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시왕 신앙은 적어도 10세기말에 고려왕실에 도입되어 김치양 (?-1009)라는 인물이 궁궐 안에 시왕사을 건립하였고, 숙종 (1095-1105) 및 인종(1122-1146) 등에 의해 예배의 대상으로 숭배 되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 고려 시대에 귀족간에 성행했던 신앙형태 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민간에서 성행했던 시왕 사상이 고려 왕실에 도입되어 성행하면서, 시왕 세계관이 보다 관료화, 팽창화 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해인사 판본을 시점으로 후대의 한국 시왕경들은 이런 포괄적인 시왕세계를 따르며, 일본의 무로마찌(1185-1330) 시대본을 모사 했다고 믿어지는 호쥬인 寶壽院 시왕경도 해인사 시왕경을 모본으로 하고 있다. 이 연구는 중국 불교의 한 면모가 고려에 도입되어 변화하여 일본에 전달되는 구체적인 사례 연구로서 동아시아 불교의 전개, 발달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