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기/닫기 버튼

이 논문은 이른바 ‘2차 시조부흥운동’의 전개를 개괄하고 그 과정에서 펼쳐진 논의들의 동의와 충돌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한 의미 등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한국현대문학사 내에서 ‘2차 시조부흥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려는 시도이며, 궁극적으로는 한국현대문학이 일제강점과 해방, 6ㆍ25를 거치며 자기정립을 해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전통’의 역할과 의미를 규명하려는 노력의 선행 작업에 해당한다. 1952년 부산에서 처음 결성된 ‘시조연구회’와 『시조연구』는 2차 시조부흥운동의 첫발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활동은 시조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비평, 창작 등에 걸친 폭넓은 것으로 시조를 부흥하기 위한 적극적인 운동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시조연구』의 「간행사」와 이태극의 「시조부흥론」 등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시조부흥에 대한 지향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시조를 현대시로 정립시키자는 문학적인 측면의 것이며, 둘째는 ‘국민문화 재건, 국가민족의 재편 확립’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담지체로서 시조가 복무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1955년 1월 조선일보 등 저널리즘의 전통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시조부흥운동’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는데, 시조의 부흥은 당위의 것으로 인정한 바탕위에 논의가 전개된다. 이 시기는 시조의 문학적 자기 갱신의 노력을 펼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56년 6월 정병욱의 「시조부흥론 비판」을 필두로 부정적 의견들이 연이어 제출된다. 시조의 역사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현대시로서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 역사적 가치와 현대시로서의 향유 사이에 ‘제2 예술론’이 제시되고 정병욱의 이 제안은 이후 여러 논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1958년은 ‘2차 시조부흥운동’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데, 이후 시조부흥에 대한 관심은 ‘전통론, 혹은 민족주의 문학론’으로 흡수된다. 한국의 현대문학은 ‘전통과 현대, 형식과 내용, 형식에서의 정형과 자유, 정치성와 문학성’ 등을 시조부흥운동 안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시조부흥운동은 한국현대문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현대문학의 자기 정립을 위한 하나의 계기였고, 시조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조의 위치를 한국현대문학 안에서 객관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판단된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process and meaning of The the 2nd Sijoh Renaissance campaign. The campaign was started in Busan with The Research Association of sijo. And until June 1956, It’s focussed on the modulation of form and content. But Jung Byung-uk opposed and debated the campain, and issued “second arts” as an alternative for sijo. His suggestion was widely accepted and, the discussion about the campain combined to the nationalist literature issue. The modern literature of Korea could experience ‘tradition and modern, form and content, political and literary’ in one genre during the 2nd Sijoh Renaissance campain. The campain was a chance for The modern literature of Korea to establish its identity. And as Siji, it’s the process of objectif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