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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교양소설 『페터 카멘친트』의 예상 밖 대성공으로 하룻밤사이 유명인사가 되고 경제적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된 27세의 청년 작가 헤세는 같은 해 8월 9년 연상의 바젤 출신 여류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 후 보덴제 호반의 작은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해 1912년 9월까지 그곳에서 생활한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시민적 가정생활을 하고 미술가·음악가·작가·정치가 등 여러 분야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가운데 소설가·시인·평론가·편집인 등으로 다양한 문필 활동을 펼친 이 가이엔호펜 시절을 헤세는 자신의 “시민적 시대”라고 부르는데, 논문은 이 시대 헤세 시를 주제로 다룬다. 이 시기 산문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논의가 있어 왔으나 시와 관련해서는 개별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부분적인 언급이 가끔 있어 왔을 뿐 이 시기 시 작품 전체를 망라하는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적 시대” 헤세 시는 일견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바로 앞 시기 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시인 헤세의 달라지고 발전한 면모를 보여준다. 다채로운 자연현상을 삶에 대한 비유와 상징으로 읽어내는 격조와 깊이를 갖춘 자연시, 정착과 안정의 시민적 가정생활에 대한 회의와 넓고 큰 세계에 대한 동경을 주제로 하는 여행시, 인간존재와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형안과 그 시적 형상화가 돋보이는 철학시, 예술가적 삶과 시민적 사회생활의 갈등을 주제로 하는 예술가시 등 “시민적 시대”의 시는 이후 전개될 헤세 시의 본령을 이미 충분히 예고하고 있다. 논문은 헤세의 “시민적 시대”의 시를 만물의 무상과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형이상적 불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는 철학적 사상시, 물질 지향과 예술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되어 가는 시민사회에서 작가·시인이 숙명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소외와 불안·고독을 다루고 있는 ‘예술가 시’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 장르들인 자연시와 여행시는 별도의 논문에서 자세하게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