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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그동안 사회주의체제에 안주해 왔던 북한 도시 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주목해서 특히 청진, 신의주, 혜산 등 북한의 지방 대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관계망의 차원에서 이들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주의 건설 이후 북한 당국의 관료제적 통제가 주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공적 관계망’ 일색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공적 관계망이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망’을 대체하기보다는 후자를 포섭해서 집합주의적 생활양식을 유지하면서 지역사회를 단위로 사회구성원을 조직하고 감시․통제하는 기제로 기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토대가 와해되면서, 공적 관계망이 위축되거나 기능이 저하되는 반면에, 공동체적 관계망과 ‘사적 관계망’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적 관계망이 폭넓게 확산되면서, 공적 관계망과 공동체적 관계망이 이에 포섭되고 통합되면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외부와의 접촉이 비교적 잦은 청진, 신의주, 혜산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지역별로 사회적 관계망 변화의 형태나 시기에서 약간의 편차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계획경제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사회적 관계망에서 사적 관계망이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 사회의 실핏줄과도 같은 사회적 관계망의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구조적 변동이 투영된 결과일 뿐 아니라 쉽사리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