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기/닫기 버튼

누구의 관점인가? - 1인칭 시점과 안으로부터 상상하기 최진희 상상력은 예술 이해와 감상에 있어서 중요한 인식능력중의 하나이다. 철학자들은 영상매체를 감상하는데 필요한 상상력의 종류와 그 성격을 좀 더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관객이 작품세계에 대해 취하는 관점에 따라서 상상력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e.g. 월튼, 커리, 월하임, 스미스) 하나는 관객이 작품 속에 묘사된 사건이나 상황을 작품세계 바깥에서 관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이 작품 속에 묘사된 사건이나 상황을 그 내부에서 직접 목격하는 듯한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첫 번째 형태의 상상력을 통해, 관객이 작품에서 묘사된 사태를 명제형태로 파악한다면 (예를 들면, ‘이러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두 번째 형태의 상상력을 통해 관객은 작품 속에 묘사된 사건들을 마치 자신이 체험하는 듯한 상상을 한다.(‘이런 상황하에서 난 이렇게 느낄 것이다’) 영미 미학에서 주된 논제중의 하나는 영상매체가 지니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관객의 관점이 작품 세계 내부 혹은 외부에 위치하느냐의 문제였다. 이는 영상매체의 경우, 소설과는 달리 카메라가 항상 작품세계 내부에서 주인공들과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작품의 시점이 관객의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소위 필자가 Disjunctivism이라 명하는 견해에 따르면, 관객의 국부적 관점이 작품세계 안 혹은 밖에 위치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주인공들의 경험이 일인칭시점으로 묘사될 때에, 관객 역시 작품세계 속에서 그들의 경험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상상한다는 것이다. 본고는 그러한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위 견해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주인공들의 경험이 1인칭 시점으로 묘사될 때에, 관객 역시 작품세계 내에서 자신이 주인공인양 그들의 경험을 상상한다는 견해는, 그 둘 간의 어떤 상관관계를 성립하는 경우에만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해, 영상을 매개로 어떻게 주인공과 관객이 유사한 현상학적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영상매체를 통해 감각경험이 전달하는 방식은 우리가 육안으로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육안으로 다른 거리에 놓인 두 물체를 지각할 때, 그 상대적인 크기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비해서, 같은 장면이 카메라를 통해 포착되었을 경우, 사물의 크기가 거리에 비례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카메라 렌즈(텔리포토 렌즈 혹은 와이드 앵글 렌즈)에 따라 사물간의 거리가 축소되거나 과장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육안으로 지각하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두 번째 문제점은 주인공의 경험이 이미 1인칭 시점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면, 왜 굳이 관객이 같은 1인칭 시점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왜냐하면 이미 주인공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관객에게 자명하다면, 관객이 그것을 자기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유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관객이 1인칭 시점에서 자기 자신의 경험을 상상해야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주인공의 심리나 감정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주인공과 관객간의 인식론적 갭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관객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주인공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그 상황하에서 주인공이 반응할 것이지를 유추해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체의 시점이 관객의 작품감상에 어떠한 영항을 미칠까? 본고는 작품의 시점이 관객에게 어떤 현상학적 차이점을 낳는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시점의 차이가 작품세계에 대한 정보 전달의 차별화에 있다고 보고, 영상매체가 다른 매체와 달리, 동일한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공감각적인 채널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영상매체의 특수성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