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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참구와 돈오 견성의 인과 관계에 대한 해명은, ‘간화선의 화두 참구에서 역설하는 의정(疑情)은 어떤 것이기에 돈오 견성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에 대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먼저 화두 참구의 목적인 돈오 견성의 내용을, 혜능의 견해를 중심으로 확인하였다. 이어 대혜의 간화선 사상이 돈오 견성의 핵심 내용인 ‘분별의 해체ㆍ 무념ㆍ 관조(반조)’를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간화선에서는 돈오 견성의 방법론으로 왜 의심/의정에 몰두하는 화두 참구를 수립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간화선이 공안 화두로 인해 촉발시키려는 ‘의심/의정’의 성격에 놓여 있다. 이에 관한 종래의 견해는 두 가지이다. 의심의 일상 언어적 의미에 의거하여 ‘모르는 해답을 알고자 하는 탐구적 의심’으로 보는 것이 그 하나이고, 분별심 억제를 위한 마음 집중의 도구적 기능을 주목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견해 모두 화두 의심과 돈오 견성의 인과적 상관성을 파악하는 데는 불충분한 것이다. 대혜의 법문을 비롯한 간화선의 모든 화두 참구 법문에서 예외 없이 역설되는 것은 바로 ‘화두 의심으로 일체 분별심을 막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흔히 화두 의심을 ‘산란한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여 분별심을 제어하는 일념 집중의 매개’로 파악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왜 여타의 일념 집중 방식들과는 달리 화두 의심이 돈오 견성으로 이어지는가?’에 답하려면, 화두 의심을 단순히 마음 집중을 위한 수단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 화두 의심이 돈오 견성을 위한 분별심의 해체로 이어지게 되는, 그 인과적 고리를 해명해 주는 다른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의심’이라는 말이 무엇을 탐구하는 맥락에서 사용될 때, 그 일상 언어적 의미는 분명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다. 탐구의 의지나 열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의심’은 해답을 향한 조준력이나 집중력을 높여간다. 화두 의심에 대한 종래의 두 가지 시선은 각각 조준력과 집중력에 착안한 것이다. 그런데 탐구적 의심에는 또 하나의 특징적 면모가 있다. ‘아직 알지 못함에서 오는 미확정 혹은 무규정의 마음 상태’가 그것이다. 아직 해답이 확정되지 않아 개념적 정의나 구획이 설정되지 아니한 무규정의 마음 상태가, 탐구적 의심이 지니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화두 의심을 챙기는 것이 어떻게 분별심의 해체와 그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는가? 의심의 집중력을 활용하여 분별적 사량을 제어하려는 것인가? 화두 참구의 의심 챙기기를 그러한 ‘집중으로 분별 제어’라는 발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미흡하다. 간화선에서 분별심의 극복과 관련하여 주목한 것은 ‘의심이 지니는 무규정의 마음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의심의 무규정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오롯하게 챙겨간다는 것은, 곧 분별적 정의나 경계 짓기를 거부하는 마음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간화선은, 화두에서 촉발되는 의심에서 ‘규정 짓지 않는 마음 상태’를 잡고 거기에 힘을 실어 선명하고 응축된 상태(疑團)로 확립시켜 챙겨감으로써, 그 어떤 분별적 규정의 범주 안으로도 휘말려 들지 않을 수 있었다. 화두 의심을 챙긴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려고 애쓰는 마음’도 아니고, ‘의심하는 마음의 집중력을 간수해 가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규정 짓지 아니하는, 경계 미확정의 마음 상태’를 챙겨 가는 것이며, 그 결과 자연스럽게 모든 분별적 규정에 말려들지 않는 국면을 수립하여 유지해 가는 것이다. 공안에서 돈발(頓發)한 화두 의심의 ‘분별하지 않는 무규정의 마음 상태’를 순일하게 챙겨 가면, 대상에 대한 분별적 구성의 범주에 휘말리지 않는 마음 자리가 드러나 그 자리에 서게 된다. 이 지점은 정념의 ‘알아차림’으로 수립되는 ‘분별 범주/체계에 휘말려 들지 않는 마음 자리’와 같다. 정념은 신(身)ㆍ 수(受)ㆍ 심(心)ㆍ 법(法)에 대한 ‘알아차림’으로써 신(身)ㆍ 수(受)ㆍ 심(心)ㆍ 법(法)에 대한 분별적 구성 체계에 휘말려 들지 않는 국면을 수립하는 길을 설하고 있고, 간화선은 ‘의심의 무규정적 국면’을 챙겨 역시 분별적 구성 체계에 휘말려 들지 않는 마음 국면을 수립하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념과 화두는 그 긴 시공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경이롭게도 통한다. ‘의심의 무규정적 국면’을 챙겨 분별적 구성 체계에 휘말려 들지 않는 마음 자리를 열고, 그 마음 자리를 오롯하게 간수해 가다보면, 그 자리를 지키는 힘이 충분해졌을 때, 문득 분별심에서 말끔히 해방된 지혜와 자비의 존재 국면(佛性/自性/自性淸淨心/本性)이 온전히 드러난다. 돈오하여 견성한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이 돈오 견성의 자성(自性)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고 세계와 만나는 일이 기다린다(牧牛行/悟後萬行/頓悟인 漸修).


The school of Seon(禪宗), especially the Seon of seeing the Gong-An(公案), asserts that the doubt of the Wha-Doo(話頭 疑心/疑情) leads to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頓悟見性). There are two views on the interrelation between the doubt of the Wha-Doo(話頭 疑心/疑情) and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頓悟見性). One is that the mind which desires to know the unknown makes the acquiring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頓悟見性). This view pays attention to the ordinary meaning of the word 'doubt'. The other is that the doubt of the Wha-Doo(話頭 疑心/疑情) is a kind of method for concentration which makes the mind not-divided. But these two views are not sufficient argument to explain the causal interrelation between the doubt of the Wha-Doo and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The doubt of the Wha-Doo has the aspect of non-prescription. We have to pay attention to this aspect of non-prescription to understand the causal interrelation between the doubt of the Wha-Doo and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The seeker of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takes the aspect of non-prescription in Wha-Doo and concentrate on it. thus can acquire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Seeing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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