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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문제에 대한 토론은 최근 한국에서도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 DaF계에서는 이 테마에 대해 아직도 매우 소극적인 자세가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테마를 다루는 논문은 여전히 극소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추측되는 젠더 문제에 대한 낮은 의식은 한국의 교재 저자들에 의해 집필되었거나 편집된 여러 대학생/성인용 독일어 교재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대하여 단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우선 학습자들에게 제시되는 독일어 사용의 범례는 일반적으로 남학생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의사/여의사’와 같이 남성이 특정한 직업을 대표하는 것으로 제시되거니와, 이때 ‘여의사’는 항상 ‘(남)의사’보다 부차적 의미로 언급된다. 이와 같은 남성 중심적 시각은 명사의 성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항상 남성명사를 일차적으로, 그리고 여성명사는 이차적 혹은, (중성명사에 이어) 삼차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은 모든 교재에서 거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성은 거의 언제나 교사, 우체부, 의사 등으로, 그리고 여성은 주부, 판매원, 간호사 등으로 그려짐으로써 위계 질서에 따른 양성 관계를 규정하는 시각이 답습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은 형용사를 취급하는 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령, 원급-비교급-최상급을 연습하는 장에서 여성은 ‘아름다운’ 혹은, ‘더 아름다운’ 혹은,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남성은 ‘강한’ 혹은, ‘더 강한’ 혹은, ‘가장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에 비해 전통적 독일어 사용에 내재된 성 차별적 즉, 편협하고 언어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소에 대해 70년대 이후 독일어권에서 일어난 비판과 그 성과 내지 실제 언어사용 상의 변화를 고려한 교재는 거의 전무하다. 예컨대, 부정대명사 ‘man’과 같은 의미로 ‘frau’를 단독으로 혹은, 함께 ( ‘man/frau’) 쓴다거나, 남녀를 동시에 지칭할 때 여성 명사의 복수 어미 중 ‘i’를 대문자 ‘I’로 바꾸어 사용하는 경우 ( Bürger und Bürgerinnen = BürgerInnen) 등과 같이 이미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학술서적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여러 새로운 표현법에 대해서는 어느 교재에서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젠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의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젠더 문제에 대한 이와 같은 의식 부재는 마땅히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성별에 있어서든 사회계층 면에서든 혹은, 인종적 차원에서든 인간관계의 다변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것은 새로운 양상의 자기의식 및 타자인식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양상은 결국 언어 내지 외국어 학습 및 사용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더욱 폭 넓고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