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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李穡의 인간적 네트웍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었는가에 관심을 두고, 목은집에 나오는 불교 관련 글을 통해서 이색의 불교계와의 인맥, 불교에 대한 그의 입장 등을 밝혀 보고자 한 것이다. 牧隱集에 등장하는 인물을 조사하여 관료, 친인척, 승려, 원 사대부 등으로 유형화 하였을 때 승려의 범주에 속하는 대상이 100여명에 육박한다.목은집에는 이색의 생애 중에서 恭愍王代 仕宦期 전반부와 실의기 중 우왕대 전반기인 50세~56세(1377년~1383년)까지의 시가 집중되어 있고 우왕대 말기인 56세 이후의 글은 없다. 마지막에 귀양지에서의 애환을 담은 글이 따로 묶여져 있을 뿐이다.본고에서는 이색이 만난 승려들을 세 시기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제1기는 산사에서 수업하면서 만난 스승, 친우들이다. 여기에는 懶殘子, 幻菴 混修 등 예로 들 수 있다. 이색은 소년기에서부터 산사에서의 독서의 영향으로 불교신자로서의 생활양식에 익숙해 있었고, 불교 교리나 불교 故事에 대한 이해와 지식도 매우 높은 수준을 이루게 되었다. 제2기는 관직활동기로서 그의 불교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인식을 보여준다. 왕명에 의해서 또는 개인적인 부탁으로 불교관련 기를 많이 남겼는데, “불교는 이단”이라는 인식과 “불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함께 있어서 이른바 儒佛共存的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3기 失意期의 글에서는 불교에 대한 유학자로서의 인식은 여전하지만, 실생활은 거의 불교에 귀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의기에 이색과 교유한 많은 승려들은 조계종 뿐 아니라 화엄종 천태종 자은종 등 계파의 구별을 불문하고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히 나옹에 관련된 비문의 대부분을 이색이 짓는 등 나옹과 환암, 그리고 환암의 제자와 의 교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이색이 지은 기문에서는 불교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을 두면서 불교와 유교를 하나로 융합시키려는 논리가 일관적으로 펼쳐진다. 즉 이색의 불교인식은 유자의 입장에서 유교 논리에 의해서 불교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교인식은 鄭夢周, 鄭道傳 등에 의한 斥佛論보다 앞선 시기 사대부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Relationship of Lee Saek with Buddhism Analyzed through Mogeunjip(牧隱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