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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식민지기 도시로 이주한 향반 출신 유교 지식인 海岳 金光鎭(1885~1940)과 그의 가족이 도시 이주 후 직면하게 된 진학 및 구직 문제와 결혼 문제로 인한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타협 방향을 살펴 본 것이다. 이를 통해 1920년대 도시의 성장, 그 속에서 탄생한 도시인들의 곤경이 갖는 역설적이고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식민지기 거대 변동의 지표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 1924년 김광진이 고향 비안에서 대구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은 이념적으로는 1920년대 자립과 직업을 중시하는 청년 운동의 이상이 작용했으며, 현실적으로는 아들들의 교육과 취업 문제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김광진과 그의 가족들의 삶은 큰 전환을 맞이했으며, 이것은 근대 도시와 도시인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도시 이주 후 김광진과 그의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했으나, 진학과 구직, 혼인 문제에 있어서 어려움과 갈등을 겪게 된다. 진학과 구직에서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이것은 김광진의 바람이 상당 부분 성취된 것이었다. 단, 첫째 아들은 끝까지 김광진과 갈등을 빚었고, 구직 활동에 실패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김광진은 도시를 정보와 기회는 많지만 마음을 유혹하는 이중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선택이 성공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충분하지는 않지만 남겨진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성 가족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근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전통적 여성의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도시 이주로 인해 가사 노동이 증가하여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신식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둘째 며느리는 그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도, 자식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시어머니 장씨는 둘째 며느리의 처지에 공감했고, 무엇보다 가사 도움을 위해 그녀를 지지했다. 첫째 아들 내외는 신식 결혼을 주장하는 둘째 아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했다. 이는 결혼 문제가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뿐만 아니라 젠더, 경제적 이해관계와도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가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된 것에 대해 김광진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여 이를 중재하고자 했다. 人情을 중시하는 구세대의 사고와 개인의 욕망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사고, 이 兩者를 완전히 인정하자는 ‘兩全主義’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은 모순적인 현실을 공존시키려는 절충책이었지만, 김영소가 신식 결혼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부친이 사망할 때까지 이것을 미루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전통과 근대의 사고를 통합의 관계로 전환하려는 김광진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후 그는 이를 발전시켜 ‘情欲兩養論’과 ‘鼎足論’으로 자신의 사유를 확장시켰다. 이렇듯 식민지기에 근대 교육의 빠른 수용과 대비되어 근대 결혼으로의 전환이 지체되면서 빚어진 미묘한 엇박자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심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도시 이주와 그에 따른 일상의 경험들이 철학적 사유로 확장되는 과정을 밝히는 심화 작업이 요구된다. 아울러 김광진과 같은 유교 지식인들의 ‘도시인으로의 탄생과 그 곤경’에 대한 역사적 의미가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위해 많은 사례를 발굴하여 범주화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Confucian intellectual Hae­ak(海岳) Kim Kwang­Jin(金光鎭) and his family’s migration to city and their survival strategy accordingly. To do so, the paper examined the background and meaning of Kim Kwang­Jin’s migration to city after leaving his hometown Bian(比安).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abhorred cities that were secular and pursued profit. However, Kim Kwang­Jin accepted a new modern trend at a modern educational institution in Daegu(大邱) in 1906 and in this condition decided to migrate to a city for an independent life and the education of his sons. After migrating to the city, Kim Kwang­Jin’s sons suffered from an extreme mental stress due to employment and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However, their wish to be accepted into a good school and find a decent job during the colonial period was difficult to be achieved in reality. Also, the conflict among the family members deepened as they faced an economic hardship over the marriage of second son. Although the migration to city was merely one incident, the family members did not have the same, single experience as a result. In addition, they had different stances according to gender, generation, and economic interests. Kim Kwang­Jin’s solution toward such conflict was ‘yang­jan­joo­eui(兩全主義),’ which was to completely admit the traditional thought of old generation and the modern thought of new generation. Through this, the paper could verify that the migration to city, education, employment, love and marriage, and economic problems were all in a complicated, intertwined relationship. Therefore, this paper is significant because it reproduced the various perspectives and stances within a family as multi-layered, intersecting compl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