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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학우회는 안창호가 이끈 비밀결사체인 신민회의 표면기관이자 흥사단의 전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항일의식이 강한 신민회와 개인 및 단체의 수양을 우선으로 하는 이른바 ‘선실력양성 후독립’의 지향은 상충되는 결과를 빚었고 이로 인해 청년학우회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든 감이 있다. 이 연구는 청년학우회의 조직 구성 및 그 구성 인물들의 활동 양상을 재구함으로써 청년학우회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했다. 우선 청년학우회는 설립 당시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서북출신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실제 조직 활동은 최남선이 주축이 되어 한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지역, 종교, 학연에 무관하게 전개되어 간 양상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통감부의 승인을 받은 합법단체였던 만큼 다양한 활동들이 가능했는데 음악회, 도서관, 강습회 등을 통해 청년들의 실력양성을 도모했다. 특히 인격수양과 단체생활의 훈련을 통한 이러한 방법은 이동녕을 중심으로 한 학우회 인사들이 망명하면서 급진적 민족주의가 탈각되는 현상과 함께 보다 두드러지는데 바로 이 점이 흥사단의 전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명분이 된다.
青年学友会は安昌浩が率いていた秘密結社である新民会の表向きの機関であり、また興士團の前身としてよく知られている。ところで、抗日意識の強い新民会と、個人および団体の修養を第一とする所謂‘先ず実力養成、後独立’への志向は、互いに衝突する結果をもたらし、これにより青年学友会の性格を曖昧にしてしまった感がある。本研究は青年学友会の組織構成およびその構成員の活動のあり様を再構成することにより、青年学友会より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まず、青年学友会は設立当時、安昌浩を中心としたキリスト教系-西北出身がその主軸をなしていたが、実際の組織活動は崔南善が主軸となり、漢城を中心にして行われ、地域、宗教、学校とは無関係に繰り広げられていった姿を見せている。なによりも、統監府の承認を得た合法団体であっただけに、多様な諸活動が可能であり、音楽会、図書館、講習会などを通じ、青年たちの実力養成を図った。とくに人格修養と団体生活訓練を通じたこうした方法は、李東寧を中心とした学友会会員たちが亡命し、急進的民族主義が抜け落ちていく現象とともに、いっそう著しくなったのだが、まさにその点が興士團の前身として引き継がれていく名分と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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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年学友会, 新民会, ‘105인 事件’, 興士團, 崔南善, 『少年』, 申采浩, 青年学友会 趣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