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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은 조선 사상사에서 『노자』와 『장자』를 주석한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가의 인성론적 입장에서 『노자』와 『장자』를 수용하고, 반유가적 노장을 친유가적 『노자』・『장자』로 변용하여 해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반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는 『노자』 18장 해석에서 보이는 문맥의 변형의 문제이고 둘째는 ‘『장자』를 『맹자』의 性善論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소요와 양생 등 개인적 안위 연장을 주장하는 『장자』를 公으로 규정하여 사회성 강한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이 도가 텍스트에 대한 유가적 재해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세당은 유가와 도가의 정면충돌 가능성을 삭감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무리한 해석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박세당의 문맥의 변형과 노장 사상의 원의 훼손 등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노장 연구를 감행하게 된 동기에 관하여 필자는 두 가지 가설을 설정하였다. 첫 번째 가설은 ‘박세당의 노장 연구는 서인 노론의 주자 절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응의 일환이며 노장 연구를 통해서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설은 ‘박세당의 노장 연구는 벽이단의 일환이었다’라는 부분이다. 주제어: 서계 박세당, 명재 윤증, 주자, 실학, 격물치지
朴世堂は朝鮮思想史において『老子』と『莊子』の解釈家で有名な思想家であり政治家である。朴世堂は儒家の人性論を中心で『老子』と『莊子』を受容するのであった。そして反儒家的な老荘を親儒家的な老荘へ変容して解釈するのであった。こんな解釈には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たちが三つある。一番、彼の『新註道德經』の18章で見られている文章の変形である。二番、『莊子』の成心について『孟子』の性善で解釈するのが正当性かの問題である。三番、個人てきな性向が強い『莊子』を社会哲学で再解釈するのができるかのである。勿論、朴世堂は道家のテキストの儒家的な解釈を進行しながら無理な解釈するしかないのである。だから筆者はこのように無理な解釈しなければならない動機について次のような二つの仮説を立てるのである。一番の仮説は朴世堂の『老子』と『莊子』の解釈の朱子絶対主義に対する批判的な対応の一環であり、その老荘研究を通じて文化的な多様性を追求しよったのである。二番の仮説は朴世堂の親儒家的な『老子』と『莊子』の解釈の本気は闢異端であった可能性があるも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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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世堂, 新註道德經, 南華經註解刪補, 道家, 韓國道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