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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68세가 되던 1674년(현종 15) 무렵, 제자들과의 강론을 바탕으로 삼아 호연장에 대한 주자의 주석을 보충한 글인 「浩然章質疑」를 저술하였다. 송시열은 不動心의 근원으로서 勇의 개념을 精粗의 차이에 따라 血氣之勇과 義理之勇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養氣의 방법인 ‘勿忘勿助’의 의미에 대하여, 天理의 보편성을 설명한 『중용』의 ‘鳶飛魚躍’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知言의 문제의식을 『대학』의 格物致知와 결부하여 논하였고, 養氣 또한 誠意正心의 의미로 이해하였다. 즉 송시열은 ‘存天理 去人欲’이라는 성리학적 명제를 바탕으로 삼아 ‘格物致知 = 存天理’, ‘誠意正心 = 去人欲’으로 파악하였는데, 이때 ‘存天理 去人欲’은 단순히 형이상의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知言(=格物致知=存天理)과 養氣(誠意正心=去人欲)의 문제 역시 현실의 차원에서 재해석될 수 있었다. 송시열은 義理之勇과 血氣之勇의 차별성을 對淸復讎의 방도에 관한 자신과 효종의 차이로 해석하며, 즉위 이후 군비확충에 집중하던 효종의 북벌계획을 血氣之勇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養氣의 방법인 ‘勿忘勿助’ 역시 청나라에 대한 복수가 하루아침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천천히 추진해야 마땅함을 지적하며, 義理의 배양이 북벌계획의 전제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義理를 토대로 삼아 詖·淫·邪·遁한 말들을 구별하는 知言의 문제의식을 衛正學·斥邪說이라는 명제와 동일하게 해석하는 가운데, 尹鑴를 비롯한 남인들의 탈주자학적 학문태도를 비판하며 知言의 개념을 동원하였다. 요컨대, 「浩然章質疑」를 중심으로 한 송시열의 浩然之氣論은 개인의 수양론 차원에서 형이상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그간의 논의를 탈피하여, 17세기 후반 尊中華·攘夷狄 및 衛正學·斥邪說이라는 현실적 논리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674年(顯宗15年), 宋時烈在他68嵗那年補充修改『孟子』浩然章的朱子註,寫出了「浩然章質疑」。在書中闡述了不為所動之根源的勇氣的概念,宋時烈根據其内涵之别把勇氣分爲血氣之勇和義理之勇。並且他認爲作爲勇氣的方法的‘勿忘勿助’之意是與闡明天理普遍性的『中庸』的‘鳶飛魚躍’是相通的。 宋時然把義理之勇和血氣之勇的差異解釋成自己與孝宗的關係,把當時正在忙於軍備擴充,剛剛即位不久的孝宗的北伐計劃批判成血氣之勇。對‘勿忘勿助’,他認爲對清朝的復仇不是一朝就可以實現的問題,並強調義理的培養是北伐的前提。他把知言所包涵的詖·淫·邪·遁的排斥意識,解釋為這是與衛正學斥邪説相同的,從而批判了尹鑴等南人的脫朱子式學問態度。 綜上所述,宋時烈的浩然之氣論的特點在於,擺脫了以往修養論的範疇,轉變為尊中華·攘夷狄及衛正學·斥邪說這一現實理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