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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철학적 인간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언어가 인간의 실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언어는 크게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 나뉘어 볼 수 있는 데, 전자는 대화론적인 인간관의 근본적인 토대이고, 후자는 인간의 지식 증가 및 평등화와 개인의 자유화를 몰고 왔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을 사용하는 음성언어에 비해, 문자언어는 오직 시각이라는 하나의 감각만을 강조한 결과 점차 인간의 모습이 왜곡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인쇄에 의해 더욱 극대화되었고 나아가 인간의 사유 양식과 존재 양식의 왜곡화를 가져왔다. 구술문화에서 인간의 실존적 모습은 대화의 본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언어는 본질상 나 홀로의 독백이 아니라 나와 너의 대화를 의미한다. 나와 너는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즉 나는 너와의 대화 속에서 나의 자아를 형성하고 자아를 찾아간다. 또한 관계는 사랑 속에서만 발생하기에, 대화의 토대는 근본적으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격 형성은 이처럼 사랑에 토대를 둔 대화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에 문자, 특히 알파벳이 발명된 이후 서구인들의 생활에서 우리는 왜곡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다. 희랍 문자, 즉 알파벳이 발명된 것은 서구 사상사에 있어서 커다란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희랍 알파벳의 모음 도입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를 의미하고, 현실적 세계에서 추상적 세계로의 전이와 음향청각적 세계에서 시각적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알파벳의 모음자 도입은 인간 실존에 끼친 가장 큰 사건이었다.또한 인쇄술의 발명은 알파벳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한 원동력이었는데, 이때부터 인간의 감각은 시각만이 중요시되고 다른 감각은 무시되는 등 감각의 분열 현상이 시작되었다. 시각 중심의 서구인들은 인과관계에 의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몰두하고 일방통행식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인쇄의 특징을 “균질성, 획일성, 반복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인간은 획일화되었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고정된 관점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타자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가 아닌, 주체객체의 관계로 사물화 되었다.오늘날 현대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문자문화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2차 구술문화인 전자 매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맥루한이나 월터 J 옹은 전자 매체가 문자문화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