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炭翁 權(1604-1672)는 17세기 대표적인 예학자의 한 사람이다. 탄옹 학문의 지평은 性理學에 머물러 있으나 당시 民生의 어려움은 차치한 채 이뤄지는 성리학적 명분론과 禮訟논쟁을 공허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체계에 대한 탐구보다는 그것이 현실에 공도(公道)로써 실현되는 것을 학문과 삶의 종지로 삼아 힘써 실천했다. 즉 매사에 옳은 것을 구하고 공평무사한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求是’와 ‘主公’을 평생 추구해야 할 敎義로 삼게 했고, 그가 추구하는 ‘옳음’과 ‘공리(公理)'의 바탕에는 만물과 내가 하나라는 仁義의 정신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는 사람이 사람다움은 바로 인의(仁義)를 행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으므로 인애를 바탕으로 한 도덕 윤리의 大同사회를 지향하였다. 그러한 세계는 권위와 법령으로 유지되는 세계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공존의 세계를 지향할 때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탄옹은 도덕주체로서의 자각을 토대로 인간 심성의 보편적 정감을 통한 자발적인 융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이는 객관사회에 대한 개방적 인식과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자신과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융화정신의 표출인 바 다수에의 함몰이 아니라 비판과 반성을 통한 융화인 것이다.그러므로 실질과 옳음을 추구하는 초당취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己亥服制 禮訟에서 兩宋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게 했고 양송을 비난하는 윤선도를 옹호하기에 이르렀으며, 군주의 도덕적 자각을 통한 백성과의 연대의식을 누차 강조하는 양민론을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융화정신은 사회구조나 제도의 문제점을 외면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도덕적 심성에 대한 주체적 자각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결여된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