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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신유학, 특히 그 중에서 중핵을 이루는 주자학의 ‘수양론’은 개인 내면에서의 규율화, 개인적인 신체 행동의 규율화, 집단적인 혹은 사회적인 행위의 규율화와 같은 다양한 디스프린(discipline)을 하나의 체계 속에 결부시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종래의 수양론으로는 신유학의 수양이 갖는 복합적인 특징을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난제를 가능한 회피하기 위하여 필자는 프랙티스(practice)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하나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고자 한다. 사실상 프랙티스의 문제는 주자의 후계자들에 의해 ‘예’에 관한 언설로 전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자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명재의 유학사상을 살펴보면, 명재의 사상에서 수양론의 위치는 결론적으로 디스플린의 프랙티스화를 모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로는 명재유고에 수록된 초학획일지도(初學劃一之圖)와 수정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이다. 명재는 여기에서 비록 주자학적 궤도를 크게 이탈하지 않으면서 ‘숙흥(夙興)’ ‘일용(日用)’ ‘응사(應事)’ ‘접물(接物)’ 등의 항목과 ‘지경(持敬)’ ‘강학(講學)’ ‘성찰(省察)’ 등을 근거로 자신의 수양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재의 수양론에서 돋보이는 것은 퇴계나 고봉 내지는 율곡과 우계가 동시에 공유하고 있던 디스플린을 자신의 방식대로 프랙티스화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로부터 조선조 유학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고, 디스플린의 프랙티스화에 관심이 고조되게 되었다는 철학사적 의의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명재가 보기에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의 문제 역시 정합적인 이론에 따라 작위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일상적 실천에 따라 자연스러운 연속으로 융합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명재의 프랙티스화로의 접근이 ‘수양’이라는 문제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예학’이라고 불리는 그의 학문 또한 프랙티스를 추구한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예학’의 범주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차후의 연구대상으로 남겨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