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기/닫기 버튼

이 글은 금강대도를 창도한 土庵 李承如(1874-1934)의 철학사상을 儒敎的 관점에서 살펴보는 데 주된 목표를 두고 있다. 토암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의 상황에서 중생구제를 위한 거룩한 삶의 행적을 남겼고, 당대의 제반 현실적 모순과 종교의 이념적 갈등에 대해, 종교인이자 사상가로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현세 지향적이며 실천적인 도덕적 개화의 주창은 오늘날에도 “인류의 영원한 구세주”로 불리게 하고 있다. 이러한 토암 철학사상의 기반은 선조인 목은 이색과 아버지 동지공으로부터 배운 유교였다. 그는 이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도덕사업’으로 현실화 종교화시켰다. 그런 면에서 토암은 조선의 유교의 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成己’에 바탕을 둔 유교적 사유체계는 33세 때 나무꾼으로서의 큰 깨달음을 통해 成物的 사회실천으로 심화발전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토암의 유교에 대한 이해가 보다 특이하고 남다른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天이나 태극 및 리를 도덕 그 자체로 이해한 것이 그것이다. 또한 토암의 철학사상의 뿌리는 주자의 리기이원론에 있고 그 특성은 ‘리로서의 도덕을 체로 하고 ‘삼교일합’을 용으로 하여 ‘도덕의 종교화’를 시도한 데에서 구해진다. 그런 점에서 도덕은 천지를 관통하는 원리이자 인간존재의 궁극적 원리가 된다. 그리고 그 도덕은 천도․지도․인도를 다 포괄한다. 그러나 도덕사업에 부진한, 다시 말해서 유교 본연의 도덕적 실천성을 상실한 유교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다. 여하튼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토암은 물질이나 육신보다는 정신과 마음을 우위에 두면서 사람이 이 우주에서 도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수립하였고, 인간의 질병문제나 사회문제를 철저히 도덕의 문제로 환원시켜 해결하려고 하였다. 즉 토암의 철학사상은 충효성경이 근본이 되는 도덕사업을 內와 本으로 삼고, 삼교일합의 종교활동을 外와 末로 삼아 도덕강국과 천지인 삼재의 공존과 평화를 이땅에서 구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하겠다.



该文章指在于从儒家思想的角度分析开创金剛大道的土庵李承如(1874-1934)的哲学思想。土庵曾经在日据时代黑暗的环境下走了拯救众生的崇高的路,并且以作为思想家和宗教人士的洞见揭开现实里面的矛盾和宗教上的纠缠问题。因此,他所保持的入世倾向与追求道德开花的实践的态度使他如今被称为"永久的人类的救主"。土庵立足于祖先牧隱李穡与夫亲同知公的儒家思想而建立他的哲学思想。通过深入研究,他将他所继承的儒家思想推广到现实里面而展现宗教性的"道德事業’,这可以说他是称得上继承朝鲜儒教的人的原因。此外,他的以‘成己'垫底构思的儒家思维,是经过他当三四三岁当樵夫时的突然来到的觉悟而形成的,后来它发展成所谓'成物的'社会上的实践。这就是他的思想的创意,他把天,太極,理认为道德本身。土庵哲学思想的本源来自朱子的理氣二元論,其特点不外是他以作为道德的原理为体,以‘三敎一合’为用,以便图'将道德当作宗教'的目标,凭这种推理,道德毕竟成为贯串天地,也成为所谓人的存在的终极原理。并且天道․地道․人道都被包括在道德之内。与此相比,他针对已失去实践性的目标的道德保持批判的态度。总之,土庵基于儒教思想而将神心放在物身之上,建立了人应做为道德主体的哲学,力图藉着道德的力量癒病而且将社会问题发生的原因归结为道德,从此,他开始解决所有的问题。 换言之,土庵哲学思想以忠孝誠敬为轴的道德当作内与本,以三敎一合的宗教活动当做外与末,欲体现道德强国与天地人三才的共存和和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