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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인으로서의 타자가 초월적임을, 즉 의식 바깥에서 주제화(thématisation)를 넘어서 언어적 표현을 초과하면서 현현(apparition)한다는 점을 되풀이 해 강조하였다. 이러한 초월적 타자에 대한 증거를 자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은 레비나스의 철학은 따라서 어떤 초월성을 말하는 철학, 일종의 초월성의 철학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타자의 초월성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순 없이, 수월하게 주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을 언제나 예외 없이 존재자(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도 하나의 존재자일 것이다)를 주제화하는 명제들의 집합, 존재자의 의미를 의식에 전달하는 명제들의 집합이라고 본다면, 철학은 원칙적으로 타자의 초월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는 그 점을 간파하였고, 초월적 타자가 근본적으로 철학의 언어에 기입될 수 없다는, 또는 철학의 언어 안에서 자체모순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레비나스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데리다의 그러한 비판 이후에도 자신의 〈철학〉 내에서 타자의 초월성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의식 너머에 관념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근원적(pré-originel)으로, 의식 이전에, 감수성에 기입되기 때문에 초월적인 타자의 흔적을 철학의 언어 가운데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결국 여기서의 문제는 철학의 언어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는 데에, 더 정확히, 존재자의 규정 바깥에서, 의식 너머에서(au-delà) (동시에 의식 이하에서(en deça)에서 - 감수성 내에서, 감각적인 것 가운데 - 철학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