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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가 사회통합과 정치적 결속을 이루어 오래도록 번영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두 가지 방법이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WASP와 같이 특정한 인종 또는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모든 국민을 결합시켜 줄 수 있는 지배적 정체성을 창출하여 이를 옹호함으로써 배타적이고 단일한 가치를 사회전체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인종, 종교, 지역, 문화적 다양성을 아우르는 관용정책을 펴되, 로마제국의 ‘시민권’처럼 국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치적 정체성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에이미 츄아 교수에 따르면 세계적 패권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제국들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전자는 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후자의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한다. 고대 페르시아나 로마제국, 당제국과 몽골제국 및 대영제국 등이 모두 당대 최고 수준의 관용정책으로 그러한 헤게모니를 누릴 수 있었고, 특히 로마의 경우는 시민권이라는 관념적 접착제(ideological glue)를 통해 단일한 정치적 정체성까지도 창출함으로써 무려 천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본고는 기본적으로 에이미 츄아 교수의 역사해석에 공감하면서 이를 재검토하고 있으며, 나아가 ‘시민권’ 자체가 아닌 ‘법의 지배’가 바로 단일한 정치적 정체성을 창출하는 기반이 된다는 이론적 수정을 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평등한 시민권이란 실질적 법치, 또는 법의 지배의 하나의 구현수단에 다름 아니며, 시민권 자체도 하나의 법적 구조물(legal construction)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권이 부여된다 해도 실질적 법치가 구현되지 않으면 그러한 정치적 정체성은 창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을 위해 본고에서는 동아시아의 두 제국, 특히 당제국과 일본제국의 예를 통해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하는 실질적 법치 없이는, 설령 관용정책을 펼친다 하더라도 단일한 정치적 정체성의 창출이 어렵다는 점을 입론하였다. 끝으로 제국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한 국가나 기타 크고 작은 공동체 및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최근 법치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법치주의 논의를 법치와 정치적 통합 및 사회적 결속이라는 주제로까지 확대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관용과 법치는 한 국가와 사회의 번영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